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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하루를 거의 다 써야 갈 수 있다. 직항이 있을 땐 1시간30분이면 갈 수 있었다. 그때보다 비용은 4배 넘게 더 든다. ’직항’이 끊긴 한국-러시아 사이 이동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망가진 한-러 관계의 자화상이다.
그 가혹한 수고로움을 뚫고 지난릴게임알라딘
15~16일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제15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러시아 ‘극동경제연구원’(ERI)의 세미나가 열렸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러 국책연구기관 사이의 첫 대면 세미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면 만남이 끊긴 기간까지 더하면 두 연구소 사이에 6년 만의 대면 세미나다.
‘만나자’는 제안M&A관련주
은 한국 쪽에서 먼저 했다. 아르쫌 이사예프 극동경제연구원 원장은 “처음엔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긴 침묵’을 이어가던 아르쫌 원장은 한국의 제안이 있고 한달여 뒤 “만나자”고 화답했다. 러시아 외교부의 ‘승인’을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두달여 간 두 연구소는 어떤 주제로 어디서 만날지 실무 논의를 진행했다.
주제는 ‘세계질서 대변동기 배당주식
한-러 극동 협력의 주요 방향과 실천 과제’. 그런데 장소 선정이 난제였다. 한국에서 하거나, 극동경제연구원이 있는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가려면 비행기를 두번 갈아타며 ‘2박3일’(인천~베이징~모스크바~하바롭스크)을 이동해야 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에서 하루가 걸리고, 하바롭스크에서 850㎞ 떨어진 러시아 극동의 대표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두 국책 연구소가 은주식
6년 만에 만나기에 맞춤한 장소다.
한국인이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으려면 길게는 6시간, 짧아도 2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린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한국의 제재와 직항 노선 폐쇄에 맞서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탓이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은 입국 수속에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100억투자
특별대우’였다. 이번 만남의 배후에는 러시아 정부의 달라진 태도가 있다. 의미심장한 신호다.
아르쫌 원장은 “중단된 대화 재개가 대단히 기쁘다”며 “러-한 관계 복원을 위한 첫 시도이자 긍정적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면 어디선가 새 발자국이 필요하다”는 말로, 이번 만남이 한-러 관계 개선의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강조했다.
이틀에 걸친 밀도 높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 양쪽 참가자들은 한국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러 양국 모두 ‘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방향성에 원칙적으로 공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표적 상징물인 ‘루스키 다리’.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건설됐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양쪽 참가자들은 한-러 정부가 심각한 관계 악화 속에서도 ‘무비자협정’을 유지하고 있다며 “막다른 골목은 아니다”(아르쫌 원장)라는 인식에도 공감했다. 한국 쪽 참가자들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돌 경축 행사에 참석한 우원식 국회의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짧지만 중요한 대면 대화’가 양국의 정치적 신뢰를 높이는 데 밑돌이 되리라는 기대를 밝혔다. 한-러 정상 사이의 회담이나 직접 소통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이후 지금껏 한번도 없었다.
이를 전제로 아르쫌 원장을 포함한 러시아 쪽 참가자들은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르템 루킨 극동연방대학교 응용동양학센터 소장은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는 통화(8월28일)하면서 푸틴 대통령한테는 왜 전화를 하지 않냐”며 답답함과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 쪽 참가자들은 이재명 정부가 관계 개선 쪽으로 방향을 튼 김에 지금보다 ‘속도’를 높이고, 정상 차원의 돌파구 모색에 나서기를 바란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한국 쪽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는데다, 출범 초기인 이재명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에 대응하느라 경황이 없는 처지임을 지적했다.
양쪽 참가자들은 끊긴 ‘직항’의 복원이 급선무이자 한-러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마중물이 되리라는 데 입을 모았다.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은 “극동엔 고려인이 6만여명 있는데 대부분 가족이 한국에 있다”며 “한-러 직항 복원은 무엇보다 인도주의 조처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쪽 참가자들은 ‘남북 대화 단절’과 ‘북-러 관계 개선’의 얼핏 엇갈린 듯한 정세의 변화를 ‘남·북·러 3각 협력’이라는 긍정적 변화로 전환할 아이디어도 내놨다. 마리아 쿠클라 극동연방대학교 동양학부 교수는 “남·북·러 3각 협력에 불리한 요인이 많다”면서도 “농업·식량안보 분야에서는 남·북·러 3자의 공통 분모가 상당해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쿠클라 교수는 “지금은 정치적 돌파보다는 작은 단계적 성과를 쌓아가는 게 남·북·러 3각 협력의 현실적 경로”라고 덧붙였다. 백준기 한신대 한반도평화학술원 원장은 “(한-러 관계 개선이라는) 정책에는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며 “극동에서 러시아 쪽이 남·북·러 3각 협력에 힘을 쓴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의 출발 항공편 안내판. 한국 가는 비행기는 하나도 없는데, 평양 가는 비행기는 두 편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나빠진 한-러 관계와 북-중 동맹 복원이라는 엇갈린 흐름을 드러내는 안내판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블라디보스토크 대면 세미나’ 성사를 디딤돌 삼아 10월22~23일엔 부산 해운대에서 러시아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이메모)와 함께 ‘북극항로’를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연다. ‘이메모’는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2000여명 규모의 ‘대통령 전략 싱크탱크’다.
엘레나 자오스트롭스키호 극동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 3~6일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서 열린 제10차 동방경제포럼에서 북극항로 특별세션이 있었다”며 “북극항로와 관련해 한-러 협력이 진짜로 가능한가, 한국은 어떤 분야에 특히 관심이 있나”라고 물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일본 연쇄 방문에 앞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북극항로 개척’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중심으로 미국, 러시아, 북한, 한국, 일본이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북극항로’를 망가진 한-러 관계 복원의 동반자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한-러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마중물 붓기는 계속 된다.
블라디보스토크/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